역사란 무엇인가

제2판 서문

Chapter 1. 역사가와 그의 사실

(원서의 제목은 “The Historian and His Facts”)

‘역사’에 대한 정의는 시대와 사회에 대한 우리의 견해로부터 독립적일 수 없다:

우리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려고 할 때, 우리의 대답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우리 자신의 시대적 위치를 반영하게 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관해서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더욱 폭넓은 질문에 대한 대답의 일부가 된다. —p17

사실 취급에 있어서의 정확성 자체는 역사가의 본질적 기능이 아니다.

어떤 역사가를 정확하다는 이유로 칭찬하는 것은 어떤 건축가를 잘 말린 목재나 적절하게 혼합된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집을 짓는다는 이유로 칭찬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그의 직업의 필요조건이지만 그의 본질적인 기능은 아니다.|

이 장의 결론:

따라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첫번째 대답은,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a con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라는 것이다. —p50

On Historical fact

Chapter 2. 사회와 개인

사회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개인이란 존재할 수 없다. 역사가 자신과, 역사에의 연구 대상인 인물 역시 사회와 영향을 주고받는 개인들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개인이 사회로부터 분리된다면 말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을 것이다. …

만일 우리가 사회의 밖에 있는 추상적 개인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려고 한다면, 과거에 대해서도 현재에 대해서도 진정한 이해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 역사가의 지식은 오로지 그만의 개인적인 소유물이 아니다. 아마도 여러 세대의 사람들이 그리고 수많은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그 지식의 축적에 참여해왔을 것이다. 역사가가 그 행동을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은 진공 속에서 행동한 고립된 개인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과거의 사회와의 연관 속에서 그리고 그 사회의 충격을 받으면서 행동한다. —p52-57

여기서의 나의 목적은 다만 두 가지의 중요한 진리를 설명하는 것이다. 첫째, 여러분은 역사가 자신이 연구에 들어가면서 가지게 되는 입장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그의 연구를 충분히 이해하거나 평가할 수 없다. 둘째, 그 입장 자체는 어떤 사회적, 역사적 배경에 뿌리박고 있다. 언젠가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교육자 자신이 반드시 교육을 받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요즘 말로 하자면, 세뇌하는 사람의 머리 자체가 세뇌되어 있는 것이다. 역사가는 역사책을 쓰기 시작하기 이전에 이미 역사의 산물이다. —p64

역사란 사회로부터 독립된 뛰어난 개인들의 전기가 아니다:

개인의 천재성을 역사의 창조력으로 간주하려는 욕망은 역사의식의 원시적인 단계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과거의 업적물에다 그것을 이룩했다고 생각되는 으뜸가는 영웅의 이름을 붙이기 좋아한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서사시를 호메로스라고 불리는 어느 음유시인의 업적으로, 그들의 법률과 제도는 리쿠르고스솔론이라는 사람의 업적으로 돌렸다. 이와 똑같은 경향은 르네상스에서도 다시 나타나는데, 그 시기에 고전이 부활되자 전기작가이자 윤리학자인 플루타르코스가 고대의 역사가들보다 훨씬 더 인기있고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었다. —p72

역사를 위인들의 전기로 보는 견해는 과거의 생물학 연구 방법과 비슷하다:

예전의 생물학자들은 새장이나 어항이나 진열장 속에 들어 있는 새, 짐승, 물고기의 종을 분류하는 일에 만족했으며 생물체를 그 환경과의 연관 속에서 연구하려고 하지 않았다. 아마 사회과학도 오늘날 그런 원시적인 단계에서 아직도 완전히 벗어나 있지 못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개인에 관한 학문으로서의 심리학과 사회에 관한 학문으로서의 사회학을 구별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사회적 문제들을 궁극적으로 개별적인 인간의 행동으로 환원시켜 분석할 수 있다는 견해에는 ‘심리주의(Psychologism)‘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그러나 개인의 사회적 환경을 연구하지 않는 심리학자는 큰 성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p75

역사에서 위인의 역할은?

위인은 한 사람의 개인이지만, 탁월한 개인이기 떄문에 현저히 중요한 사회적 현상이기도 하다. 기번은 ‘그 시대에 어울리게 마련인 비범한 인물이 있다는 크롬웰이나 레츠 같은 천재도 오늘날이라면 눈에 띄지 않은 채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은 명백한 진리다’라고 말했다. … 그러나 톨스토이처럼 위인을 ‘사건에 이름을 붙여주는 꼬리표’에 불과한 존재로 취급하면서 평가절하할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 위인의 위대함을 폄하하려는 것이 나의 목적은 아니다. 또한 나는 ‘위인은 거의 대부분이 악인’이라는 명제를 인정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반대하고 싶은 견해는, 위인을 역사의 밖에 놓아둔 채 그들은 위대하기 때문에 역사에 간섭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즉 그들을 마치 ‘알 수 없는 곳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와 역사의 진정한 연속성을 방해하는 요술상자 속의 소년 잭’과 같은 존재인 양 생각하는 그런 견해이다. …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인을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자 대리인이면서 이와 동시에 세계의 모습과 인간의 사유를 변화시키는 사회적 힘의 대변자이자 창조자인 탁월한 개인으로 인식하는 일이다. —p85-87

이 장의 결론. 앞 장의 결론은 보완하고 있다:

역사가와 그의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과정, 즉 내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대화라고 불렀던 그 과정은 추상적이고 고립된 개인들 사이의 대화가 아니라 오늘의 사회와 어제의 사회 사이의 대화이다. 부르크하르트의 말을 빌리면, 역사란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찾아내는 주목할 만한 것에 관한 기록’이다. 과거는 현재에 비추어질 때에만 이해될 수 있다. 또한 현재도 과거에 비추어질 때에만 완전히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이 과거의 사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리고 현재의 사회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을 증대시키는 것, 이것이 역사의 이중적인 기능이다. —p87

Chapter 3. 역사, 과학 그리고 도덕

Science and history.

Chapter 4. 역사에서의 인과관계

역사 연구는 원인에 대한 연구이다:

우유를 뚜껑이 덮힌 냄비 안에서 끓이면 넘치게 된다. 나는 왜 그렇게 되는지 알지 못하며 또 전혀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대답해야만 한다면, 아마도 나는 그것은 우유의 끓어 넘치는 성질 때문이라고 말할 것인데, 이는 웬만큼은 사실이기는 하나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럴 경우에 나는 자연과학자라고 할 수는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누구든지 과거의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에 관해서 읽거나 심지어는 쓸 수 있고, 혹은 제2차 세계대전은 히틀러가 전쟁을 원했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말하고는 만족스러워할 수도 있는데, 그 말도 웬만큼은 사실이기는 하나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럴 때는 무례하게도 자신을 역사연구자라든가 역사가라고 불러서는 안된다. 역사의 연구는 원인에 관한 연구이다. 내가 바로 앞의 강연 끝머리에서 말했듯이, 역사가는 끊임없이 “왜”란는 질문을 던진다. 그렇기에 어떤 대답을 바란는 한, 그는 쉴 수가 없다. 위대한 역사가 - 혹은 더 폭넓게 말하자면 위대한 사상가 - 란 새로운 것들에 관해서 또는 새로운 맥락 속에서 ‘왜’아는 질문을 제기하는 사람이다. —p133-134

원인의 문제에 대한 연구의 특징:

원인의 문제에 대한 역사가의 연구방법의 첫번째 특징은 대체로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 여러 가지 원인들을 제시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 ‘왜 1917년에 러시아에서는 혁명이 발생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면서 오로지 하나의 원인만을 제시한 수험생은 운이 좋아야 C 학점을 받을 것이다. … 만일 그가 볼셰비키 혁명의 원인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면 … 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개인적 원인 및 장기적 원인과 단기적 원인을 마구 주워 모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즉시 우리를 역사가의 연구방법의 두번째 특징으로 이끈다. … 한 다스나 되는 러시아 혁명의 원인들을 차례로 열거하고 나서 그것으로 그만두는데에 만족하는 수험생은 B 학점을 받을 수는 있겠으나 A 학점을 받기란 어려울 것이다. 시험관들은 ‘많이는 알고 있으나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판정할 것이다. 진정한 역사가라면 자신이 수집한 원인들의 목록을 앞에다 놓고서는 그것을 정리해야 한다든가, 그들 간의 상호관계를 고정시키게 될 원인들의 일정한 위계질서를 수립해야 한다든가, 아니면 어떤 원인이나 어떤 범주의 원인들이 ‘결국에 가서는’ 또는 (역사가들이 즐겨쓰는 말투를 따르면) ‘최종적인 분석에 따라서’ 궁극적인 원인, 즉 모든 원인들의 원인으로 간주되어야 하느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직업적인 강박감을 느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곧 연구 주제에 대한 역사가의 해석이다. —p136-137

다양성과 복잡성, 통일성과 단순성을 동시에 지향한다:

앙리 푸앵카레는 … 과학이 ‘다양성과 복잡성을 향해서’ 그리고 동시에 ‘통일성과 단순성을 향해서’ 전진해가고 있으며, 이 이중적이면서 명백히 모순적인 과정은 인식의 필요조건이라고 지적했다. 이것은 역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진리이다. 역사가는 자신의 연구를 확장하고 심화시킴으로써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점점 더 많이 끊임없이 축적한다. … 그러나 역사가는 과거를 이해하려는 충동을 가진 까닭에 과학자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답변들을 단순화하느 일, 답변들의 상하관계를 정하는 일, 혼잡한 사건과 혼잡한 특수한 원인에 일정한 질서와 통일을 부여하는 일 등을 동시에 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의 신, 하나의 법, 하나의 요소, 그리고 저 멀리 있는 하나의 성스러운 사건’ 아니면 헨리 애덤스가 추구한 ‘모든 이들의 아우성을 끝장내고 길들이게 할 어떤 위대한 일반화’ - 이런 것들은 오늘날에는 한물 간 농담처럼 들린다. 그러나 역사가가 원인을 다양화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단순화하는 작업도 해야만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역사도 과학과 마찬가지로 이렇듯 이중적이면서 명백히 모순적인 과정을 통해서 전진하는 것이다. —p138-139

역사 결정론에 대해:

나는 결정론이란 모든 사건에는 하나 또는 여러 가지의 원인들이 있고 그 하나 또는 여러 가지의 원인들 중에서 무엇인가 달라진 것이 없었다면 그 사건은 다른 식으로는 발생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신념 - 이에 관해서는 논쟁이 없기를 바라면서 - 이라고 정의할 것이다.

결정론은 역사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행위의 문제이다. 원인도 없이 행동하며 따라서 그 행동이 결정되어 있지 않은 인간이란, 우리가 지난번 강연에서 논의한 바 있듯이, 사회의 밖에 존재하는 개인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추상이다. ‘인간사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칼 포퍼 교수의 주장은 의미가 없거나 거짓말이다. 일상생활에서는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으며 믿을 수도 없다. …

옛날에는 자연현상이 분명히 신의 의지의 지배를 받는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 현상의 원인들 탐구하는 것을 불경스럽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 아이제이아 벌린 경이 인간의 행동은 인간의 의지의 지배를 받는다는 이유를 내세워 인간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가를 설명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도 이와 동일한 사고방식에 속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어쩌면 오늘날 사회 과학의 발전수준이 이러한 논의가 자연과학을 퇴행시켰을 때의 그 자연과학의 발전수준과 똑같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p142-143

역사가와 그의 원인:

이미 앞에서 우리는 역사가가 사실을 선택하고 배열하여 역사적 사실로 만드는 것에서 역사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지금 우리는 원인에 대한 역사가의 연구에서도 어느 정도 그와 비슷한 과정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고 있다. 역사가와 그의 원인의 관계는 역사가와 그의 사실의 관계와 똑같이 이중적이고 상호적인 성격을 가진다. 원인은 역사과정에 대한 역사가의 해석을 결정하며, 그의 해석은 원인에 대한 그의 선택과 배열을 결정한다. 원인의 등급화, 즉 어느 하나의 원인이나 어느 일련의 원인들 혹은 또 다른 일련의 원인들의 상대적인 중요성을 가려내는 것이 그의 해석의 핵심이다. —p156

합리적인 원인이란?

어떤 설명들은 합리적이라고 인정했고 다른 설명들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인정했다면, 우리는 일정한 목적에 기여하는 설명들과 그렇지 못한 설명들을 구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 합리적인 원인은 다른 나라, 다른 시기, 다른 조건에서도 언젠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결국 유익한 일반적인 원인이 되며 따라서 그것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우리의 이해를 확장시키고 심화시킨다는 그 목적에 기여한다. 우연적인 원인은 일반화될 수 없다. 또한 그것은 그야말로 말 그대로 독특한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교훈도 가르쳐주지 않으며 어떠한 결론도 가져다주지 못한다. —p162,163

Chapter 5. 진보로서의 역사

역사적 진보:

진보의 개념에는 무엇이 함축되어 있고 그 이면에는 어떤 전제들이 놓여 있는지, 그리고 그 전제들은 어느 정도까지 인정될 수 없는지 등을 좀 더 자세히 검토해보도록 하자.

첫째로, 나는 진보(progress)와 진화(evolution)에 관한 혼란스러운 생각부터 제거하고 싶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명백히 모순되는 두 개의 견해들을 취했다. 그들은 인간의 위치를 자연계 안에서 해명하려고 애썼다. 역사의 법칙이란 것도 자연의 법칙과 동일시 되었다. 다른 한편, 그들은 진보를 믿었다. 그러나 자연을 진보하는 것으로, 끊임없이 어떤 목적을 향해서 전진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데에는 어떤 근거가 있었던가? … 다윈의 혁명은 진화와 진보를 동일시함으로써 모든 혼란을 제거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연도 역사와 마찬가지로 결국 진보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것은 진화의 원천인 생물학적인 유전을 역사에서의 진보의 원친인 사회적인 획득과 혼동함으로써 훨씬 더 심각한 오해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그 둘이 구별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분명한 것이다. 어떤 유럽의 아이를 중국인 가족에게 맡기면 그 아이는 피부는 희지만 중국말을 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 현대인은 그동안의 여러 세대의 경험을 습득하여 그것을 자신의 경험에 합체시킴으로써 사고의 유효성을 몇 배나 증가시켜왔다. 생물학자들이 거부하고 있는 획득 형질의 전승(Lamarckism)이야말로 사회적 진보의 바로 그 기초인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진보에 일정한 출발점이나 종점이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으며 그렇게 생각해서도 안된다. … 우리는 문명의 탄생을 진보라는 우리의 가설의 출발점으로 삼으려고 할지 모르겠으나, 문명은 결코 어떤 발명품이 아니라 아마도 때때로 발생했을 극적인 비약이 수반된 무한히 점진적인 발전의 과정이었다. 우리는 진보가 또는 문명이 언제 시작되었는지의 문제로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보다 더 심각한 오해를 초래한 것은 진보에 일정한 종점이 있다는 가설이었다. … 그러나 역사의 종점을 가정하는 것은 역사가보다는 신학자에게나 더 어울릴 법한 종말론의 냄새를 풍기며, 역사의 밖에 목표를 두는 오류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

나의 세번째 논점은,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역전과 일탈과 중단 없이 곧장 일직선으로 전진한 그런 종류의 진보를 결코 믿지 않았다는 것, 따라서 가장 급격한 역전조차도 반드시 그 믿음에 치명타를 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보의 시기 뿐만 아니라 퇴보의 시기도 분명히 존재한다. 게다가 퇴보 이후의 전진이 똑같은 지점에서 혹은 똑같은 길을 따라서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경솔한 생각일 것이다. —p171-176

[!memo] 단속평형, 점진론, 도약설에 대한 논쟁이 생각나는 구절. 역사, 진화론, 고생물학, 지질학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한편, 다윈이 진화와 진보를 동일하게 취급했다는 설명은 조금 의아하다. —AK, 2002

역사의 객관성

Chapter 6. 지평선의 확대

부록. 제2판을 위한 노트

역자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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